영원한 행복과 만족(참남편 -예수)(요4:13-18) 

영원한 행복과 만족(참남편 -예수)(요4:13-18)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열심히 뜁니다. 마치 인생의 목표가 행복을 얻는데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행복을 추구하는 방식이, 방법이 잘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잘못 선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며 돈을 열심히 법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하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결혼한다고 행복할까요? 돈이 많다고, 결혼한다고, 원하는 것을 소유한다고 행복할까요? 마음에 참된 만족과 평안을 누릴까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환경이 변한다해도, 그러한 것들이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삶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 세상에서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좋은 관계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관계안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결혼한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존경하며 하나됨을 누리는 남편과 아내 안에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서로 좋은 관계안에 있을 때 가정안에 평안과 행복이 있습니다. 직장안에서 좋은 인간관계안에서 생활할 때 행복이 있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어떤 관계보다도 우리의 행복을 결정짓는 관계가 바로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속에 살고 있나요? 혹시 예수님을 신랑의 관계속에 사시는 분이 계신가요? 예수님을 신랑의 관계 안에 살 때 어떤 행복과 축복이 있는지 알고 누리고 계시나요? 우리는 모두 목마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마시고 마셔도 목마르지 않는 놀라운 만족한 삶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으로 여러분을 초대하길 원합니다.

 

영원한 행복과 만족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질문에 답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구세주로  주님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신랑으로 모시고 살고 계신분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이 진정으로 행복과 만족을 누리길 원하신다면 예수님을 신랑으로 만나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을 일부러 찾아오셨습니다. 목마른 여인에게 예수님이 먼저 말을 거셨습니다. 무엇이라 말씀하셨나요? 같이 말씀을 읽겠습니다. 

“(요 4:13, 개정)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개정)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세상에서 주는 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 세상의 재물, 이 세상의 관계 등 우리가 행복을 위해 추구하는 모든 것들을 의미합니다. 아름답게 창조된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은 우리에게 행복과 만족함을 줍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맛있는 음식들, 아름다운 장소, 사랑스런 개들…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줍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 영원한 만족과 행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성도 여러분, 계속해서 솟아나는 샘물을 보신적이 있나요? 땅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같이, 내 속에서 끊임없이 계속해서 솟아나는 기쁨과 평강, 참된 만족을 예수님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복은 도대체 어디서 얻을 수 있는 것인가요? 예수님이 주는 물을 어떻게 마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자 이 여인이 관심을 갖고 묻습니다. 

(요 4:15, 개정)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러자 예수님께서 (요 4:16, 개정)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왜 주님이 네 남편을 불러오라 했을까요? 

주님이 이 여인에게 주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요?  목마르지 않는 참된 만족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에게 예수님이 바로 이 여인의 참된 남편임을 계시하기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여인이 갖고 있는 목마름은 어떤 목마름일까요? 주님이 이 여자에게 남편을 불러오라고 한 이유는 바로 목마름을 해결하기 해서 남편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예수님이 이 여인의 진정한 남편이요 구원자임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여기에 매우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참된 남편이요 참으로 사랑하는 자로 만날 때 우리 속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만날 때 우리는 목마르지 아니한 영원한 만족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상처많은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찾아오신 이유는 참남편이요, 참 경배의 대상이요 참 사랑의 대상이신 예수님을 이 여인에게 계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교회는 신부요, 예수님은 신랑이십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친밀한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하나된 관계입니다. (엡 5:31, 개정)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엡 5:32, 개정)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사람이 아내와 한 육체가 되듯이, 그리스도 예수님과 교회인 우리 성도들은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한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관계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며 영적으로 마음으로 하나가 될 때 거기에 진정한 하나됨이 있고, 거기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이 있는 것입니다. 너무 사랑해서 결혼하고 난 후에 서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때 집안에 원수가 될 수 있는 관계가 바로 부부관계입니다. 그래서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랑하는 관계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하고 존경하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해서 결혼하고 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이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많은 관계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 관계, 사랑하는 친구 관계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친밀하고 하나라고 말하는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이 남편이요, 교회인 우리가 바로 신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와 같은 친밀한 관계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남편이라 혹은 신랑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렘 3:14, 개정)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의 남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선지라를 통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호 2:19, 개정)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호 2:20, 개정)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입니까? “내가 네게 장가들겠다.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 즉 교회와 장가들 것이고, 그 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신랑과 신부의 친밀한 관계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서로 비밀이 없고, 서로 전 존재를 드려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래서 하나됨의 친밀함과 행복을 누리는 부부의 행복을 하나님과 우리 관계속에서 우리가 누리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니라, 내 마음은 불타고 있으며 너와의 친밀한 교제를 갈망하고 있다. 나는 너와 가까운 관계를 원하며 마음 대 마음이 교감을 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소중한 신부이며, 예수님의 신부이다.

 

(사 62:5, 개정)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우리가 미성숙해도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자체로 기뻐하신다. 지체 장애자라고 기뻐하지 않는 부모가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의죄와 연약함을 슬퍼하시지만, 우리 존재 자체를 기뻐하신다.

 

예수님과 교회인 우리와의 관계가 이러한 친밀한 관계로 회복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신부인 우리가 신랑이신 주님과 친밀하게 말씀과 기도로 교제하면서 그분의 음성을 들으라, 그분의 마음을 읽으라. 그분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마음을 들어보아라.

신부에게 마음을 빼앗긴 예수님을 보라. 우리 때문에 상사병이 나신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를 너무 보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예수님을 생각해 볼 수 있는가?

아가서4장9절.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번 보는 것과 네 목의 구슬 한 꿰미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빼앗긴 마음이란 특별히 매력적인 대상으로 인해 기쁨, 또는 즐거움이 충만한 마음을 말한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나로 인해 마음을 빼앗기고 나로 인해 즐거워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예수님이 여러분의 신랑이신가? 참남편인가? 그분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가?

예배는 신랑되신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여러분의 남편은 누구인가? 무엇인가?

수년전에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영주권을 진행하면서 교회에 어려움이 있어 재정적인 수입이 없이 지내야 하는 어려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했던 때였습니다. 그 때 국제기도의 집의 24시간 기도하는 기도실에서 주일 아침에 기도할 때의 일입니다. 이 날은 찬양팀이 바이올린, 첼로 등 부드러운 악기로 주님의 사랑을 노래하며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찬양의 가사도 대부분 아가서의 내용이었고, 그 때 저는 아가서 4장을 펴서 읽으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주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다니엘아, 내가 너를 얼마나 기뻐하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아름답게 생각하는지 아니? 너는 흠이 없단다’아가서4장 전체 말씀의 구절 구절을 통해 예수님께서 저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으로 들렸습니다. ‘내가 너 때문에 마음을 빼앗겼단다’. 그리고 동시에 스바냐3:17절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나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나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는 분명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 음성을 듣는 순간에 당시 안고 있던 사역의 문제, 재정적인 어려움, 박사논문작성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어둔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답답함과 무거웠던 것들이 눈녹듯 사라지고 동시에 주님이 주시는 기쁨과 자유함이 마음속에 솟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제 눈에서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아가서4장을 통해 저를 사랑하시고 저를 기뻐하시는 신랑되시는 주님을 새롭게 만난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때 주신 깨달음이 그 이후 저의 사역과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이 아니라 주님을 신랑으로 사랑하라고나를 부르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한 분이면 충분하였습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의 신랑이 되는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참으로 답답하고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목마름속에 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결코  목르지 아니한 참된 만족을 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예수님과의 친밀하고 사랑하는 관계속에 참된 행복이 있음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무엇보다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친밀함속에서 주님은 이 세상이 결코 줄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주실 것입니다. 신랑되신 예수님이 주시는 이 놀라운 행복과 만족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영원한 행복을 얻기 위해서 두번째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있는 남편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참된 남편으로 계시하면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을 때, 이 여인은 놀랍게도 “남편이 없나이다” 고백한다. 이 고백은 이 여인의 내면의 진정한 고백이었습니다. “나에게 참으로 사랑을 주고 만족을 주는 남자는 없나이다”라는 고백이다.

참된 만족한 삶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거짓 남편을 버리고 참된 남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남편이란 사랑과 소속, 존경과 친밀함의 대상이다. 여기서 남편은 세상이 주는 안식이나 만족을 대표하는 것이다. 남편이란 나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라 믿고 의지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여인은 “남편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한다.  

주님은 그녀의 말이 옳다고 인정해 준다. 인간은 남편으로 만족할 수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남편을 10명을 바꾸어 봐도 결국 남편이 없나이다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참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영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목마름은 영적인 목마름이요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질 수 있는 목마름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물질, 권력, 명예 등 어떠한 것도 소금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만 더해 간다. 결국 이 여인의 갈증은 하나님에 대한 갈증이요, 참 남편이신 예수님에 대한 영적 목마름이었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예배하는 피조물이다. 인간이 예배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의 대상을 선택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그 예배의 대상을 하나님이든 다른 우상을 선택하게 된다.

여러분이 일주일 동안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가장 많이 스트레스 주는 것이 무엇인가? 자녀입니까? 돈입니까? 공부입니까? 사역입니까?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 늘 가장 중요하다고 늘 여기고 있는 것, 이것 없이는 안 된다, 이것만이 내 삶의 모든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우상입니다.

주님 말씀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돈이 우상이 됩니다. 돈, 재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치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없이 살수 있어도  취미생활이나 스포츠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남편이나 아내가 부모나 자식이 하나님보다도 더 중요하게 생각이 된다면 그것이 우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보다 공부가 더 우선이면 공부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고의 우상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 되면 하나님은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로서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복을 받는 도구로 하나님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의 의미가 어떤 것일까요? 이삭은 100세에 난 아들입니다.  아브라함은 그런 아들을 불 살라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을 듣는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반응했는가? 그는 열국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붙잡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아들을 제물로 드린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기 전에 아브라함이 아들을 제물로 드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시고, 결국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은 양이 있었다. 

이 말씀을 통해 주시는 우리에게 주시는 진리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입니다.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필요들을 채워주시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귀한 것인 마음, 여러분의 시간, 생명을 하나님께, 사랑하는 예수님께 드려라.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마태복음6:33(마 6:33, 개정)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처럼, 주님을 먼저 사랑하고, 주님과 바른관계를 구했을 때 하나님은 저의 삶에 얼마나 놀라운 축복을 주셨는지 모릅니다. 이곳 로스토프에서도 경험하고 살고 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이다. 상처많은 이 여인은 참 남편이요, 참 경배의 대상이신 예수님, 메시야를 만났다. 이 초라한 유대인 청년에게서 하나님께서보내신 메시야라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다. 그녀는 물둥이를 버려두고 달려나가 “와 보라 메시야가 아니냐” 외쳤다. 소리쳤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결론이다. 역사의 결론이 무엇인가? 우리 인생과 역사는 어디를 향해 흘러가고 있는가? 바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님의 나라는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것이다. 

 (계 19:7, 개정)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계 19:8, 개정)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 19:9, 개정)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이 역사는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에게 어떤 분인가요? 가장 친밀하고 가장 사랑하는 신랑으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가 생수가 되어 참된 만족과 풍성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주님과 날마다 깊이 교제하시며 그분의 음성을 들으며 나아가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이 풍성하고 놀라운 삶을 누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영원한 행복과 만족(참남편 -예수)(요4:13-18) 

영원한 행복과 만족(참남편 -예수)(요4:13-18)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자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